멕시코에서/서평

최악의운명을 최강의 능력으로 바꾼 -스티비원더 이야기

justina60 2012. 1. 17. 21:09

대부분 성공한 사람들의 뒤에는 그렇게 자리 잡고 성공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희생하고 보살펴준 어머니가 계십니다.

 

우리가 잘알고 있는

반기문 총장님이라든가 카더 태통령등

표본이 되고 있지요.

 

여기에

흑인이면서 장애까지 가지고 태어났던 스티비 원더 역시

 방황과 실의를 딛고 일어나

2009년에는 열 한 번째 유엔 '평화의 메신저'로 임명되고,

천재 뮤지션으로써 최고의 자리에서 세계의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 받고 있는

그의 뒤에는 최악의 환경에서도 자식만큼은 제대로 키우고자

노력했던 어머니가 계셨습니다.

 

스티비원더가 시력을 잃고 태어나 평화의 메신저가 되기까지...

 

보이지 않는 다고 해서 움츠러들 필요없다.고..

눈은 비록 보이지 않지만.

마음에 눈이라는 특별한 눈을 가진 남과 조금다른 눈을 가진 것 뿐이라고...

 

다른 형제들과 차별 없이 키우고자 노력했던 스티비원더의 어머니.

 

훗날

스티비는 자신의 자라온 날들을 회상하며 이렇게 말하곤 했단다.

 

"모든 어머니는 자식의 첫사랑이에요. 나를 이 세상에 나오게 해주신 어머니, 내게 지금의 어머니를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어머니는  나를 보통의 어머니들과는 아주 다르게 다루셨어요. 다른 분 같으면 앞을 보지 못하는 아이에게 그렇게 못 했을 겁니다. 어머니는 처음 내가 실명한 걸 아시고 상심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지만 나를 한곳에만 묶어놓지 않으셨조. 내가 스스로 깨달아가도록 내버려두셨어요. 그러면서도 제가잘못된 길로 들어서면 가차없이 회초리를 드셨어요. 덕분에 나는 가장 좋은 친구인 음악을 만나 불량스러운 행동들을 덜 하게 되었지요."

 

"이 분의 의지가 오늘 저를 이 자리에 서게 했습니다"

 

스티비 원더는 1974년 1월 그래미상 일곱 개 부문에 후보로 올랐고,

그 중 다섯개의 상을 휩쓸었습니다.

 그래미상 시상식이 있던날

그는 트로피를 머리위로 들어 올렸다가 어머니께 건네면서 이렇게 관중과 수백만 시청자들에게 자신의 어머니를 소개했습니다.

 

물론

어머니도 개인적으로 그렇게 좋은 환경에서 자란 것은 아닙니다.

불우한 환경에서 이남편, 저 남편을 전전하며 학대받고 무시당하며 살았지만

그 어떤 경우에서도 자식에 대한 사랑과 책임감 만큼은 그 어느 어머니보다 더 강했던 어머니였지요.

그러한 어머니의 영향으로

선천적인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던 빈민가 흑인 아이가

전세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노래하고 평화를 전하는 메신저가 되어

사랑받는 뮤지션이 될 수 있었다는 걸..

이 책을 통해

우리는 그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을 거에요.

 

노래를 통해 사랑을 전하고

장애인 고용과 소아당뇨기금, 미국 시각장애 아동을 위한 활동에 힘을 쏱은 스티비원더.

2009년 열한 번째 유엔 '평화의 메신저'로 임명된 스티비 원더는 우리에게 이렇게 속삭입니다.

 

"당신의 뜨거운 심장을 사랑하는데 쓰세요." 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