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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비스 코스텔로 내한공연에 다녀오다

justina60 2011. 2. 27. 22:15

세종문화회관에서 엘비스 코스텔로의 첫 내한공연을 보고 왔다.

사실,

그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무작정 찿아간공연.

노팅 힐에서 She 라는 곡을 불렀다는 정도 얕은 지식을 가지고 가게된 공연장.

S 석이라고는 하지만 2층에서 관람을 하게되니 아무래도 거리감이 있다.

게다가 익숙한 곡들이 아니라서 처음에는 쉽게 젖어 들지 못했는데,

 그의 멋진 기타솜씨와

열광적인 팬들의 환호를 양념삼아 슬슬 빠져들기 시작한 공연.

마침내

한시간 30여분 남짓한 시간이 지난 후, 공연장을 나올 때에는

나도 그의 팬이 되었다.

같이 간 남편은 그냥  같이 가 준 것만으로도 감사해야지...^^

 

 

엘비스 코스텔로(Elvis Costello)

  

엘비스 코스텔로는 1954년 영국 런던에서 출생했다. 그의 본명은 디클란 패트릭 맥마너스이다. 그러나 밴드의 리더이자 오케스트라의 싱어였던 아버지의 예명과 엘비스 프레슬리의 이름을 빌려와 엘비스 코스텔로라 개명한다. 물론 그가 엘비스 코스텔로로 불린 것은 프로페셔널로 음악계에 데뷔한 이후의 일이다.
아마추어 록 밴드를 결성해 활동을 하던 엘비스 코스텔로는 1977년 데뷔 싱글인 <Less Than Zero>를 발표하기까지 은행의 컴퓨터 기사를 포함한 다양한 종류의 업종을 거쳤다. 하지만, 데뷔 음반 [My Aim Is True]가 영국 차트 14위를 기록하는 성공을 거두면서 본격적인 뮤지션 생활을 시작한다. 현재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큰 뿔테안경을 쓰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인데, 데뷔 초기 이런 스타일은 로큰롤 초기의 스타였던 버디 홀리를 모방한 것이었지만, 지금은 엘비스 코스텔로의 트레이드 마크로 인정받고 있다.
Saturday Night Live를 통해 미국 시장에 얼굴을 알린 그는 대표곡으로 거론되는 <Pump It Up>, <Oliver's Army> 등을 발표하며 70년대를 마감한다.

  

뮤지션으로서의 전성기에 들어선 1980년대에 엘비스 코스텔로는 그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앨범 [Almost Blue]를 발표한다. 컨트리 음악의 커버송들이 담겨 있던 이 음반은 그가 어린 시절부터 듣고 자란 수많은 컨트리 명인들에 대한 존경을 담았던 앨범이다. 그리고 결국 그가 얼마나 많은 종류의 음악에 대한 이해와 준비가 되어있는지를 증명한 앨범이 되기도 했다. 특히나 앨범의 타이틀 곡이었던 <Almost Blue>는 재즈 싱어이자 트럼페터인 쳇 베이커에 의해 새롭게 해석되기도 했다.
비틀즈의 레코딩 엔지니어였던 조프 에머릭과 함께한 [Imperial Bedroom](1982)을 통해 좀 더 어두운 사운드를 선보인 엘비스 코스텔로는 1983년에 발표된 [Punch The Clock]의 수록곡 <Everyday I Write The Book>을 히트 시키며 또 하나의 대표곡을 선보인다. 그러나 이 시기 그의 가장 두드러진 활동이라면, 영국에서 시작된 뮤지션들의 구호활동인 Live Aid 공연장에서 비틀즈의 <All You Need Is Love>를 노래한 것이다. 영국과 미국으로만 국한되어졌던 그의 음악과 활동이 TV를 통해 전세계로 중계되면서, 비로소 인터내셔널 아티스트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기 때문이다.
엘비스 코스텔로의 음악적 실험은 80년대에도 계속되었는데, <La Bamba>를 리메이크해 히트시킨 로스 로보스, 아메리칸 록 그룹 카운팅 크로즈, 스탠다드 재즈 보컬 토니 베넷 등과 작업한 프로듀서 티 본 버넷과의 공동 작업이 그것이다. <The People's Limousine>이 당시의 결과물인데, 이 때부터 엘비스 코스텔로는 자신의 음반 뿐 아니라 다양한 아티스트들의 앨범에 프로듀서로 참여하며 활동의 영역을 넓혀간다.

  

1990년대에 들어 워너 뮤직과 계약을 체결한 코스텔로는 재즈와 록을 오가는 다양한 음악을 선보였는데, 그 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유니버설 뮤직으로 소속을 옮긴 뒤, 버트 바카락과 협력 작업으로 선보인 영화 ‘Grace Of My Heart'의 주제곡 <God Give Me Strength>이다. 영화 음악이라는 새로운 영역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엘비스 코스텔로는 이후 'Austin Powers'의 참여를 비롯해 자신이 직접 영화에 출연하는 것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2000년대는 그에게 있어 제2의 전성기라고 평가된다고 해도 그리 과언이 아닐 10년이다. 2003년에는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으며, 2004년 아카데미 어워즈에선 티 본 버넷과 공동 작업한 영화 ‘Cold Mountain'의 수록곡 <Scarlet Tide>가 주제곡 부분에 노미네이트 되었다. 이후 자신의 세 번째 아내가 된 다이아나 크롤의 앨범 [The Girl In The Other Room]을 작업하고, 처음으로 앨범 전체를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Il Sogno]까지, 바쁜 행보가 이어졌다.
스팅이 참여한 80년대의 대표적인 뉴 웨이브 그룹 폴리스와의 투어와 신세대 그룹 풀아웃보이의 앨범 [Folie a Deux]의 수록곡 <What a Catch, Donnie>에의 보컬 참여, 그리고 인기 미국 드라마 '30 Rocks'에 엘비스 코스텔로 자신으로 출연하는 등, 엘비스 코스텔로의 음악과 음악을 넘어서는 정력적인 활동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Concert In Korea


얼마 전 플래이밍 립스의 공연을 지켜보며, 국내 팝 음악시장이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아티스트, 혹은 소수 매니아와 평론가들 사이에서만 인정을 받았던 플래이밍 립스의 공연이 척박하게만 보였던 국내 공연 시장에서 성공적으로 치러졌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엘비스 코스텔로의 공연은 오히려 늦은 감이 있다.
조나스 브러더스와 같은 신세대 아티스트들이 가장 존경하는 아티스트로 첫 손가락에 꼽는 엘비스 코스텔로는 조니 미첼이나 폴 영에 비견될 만큼 높은 음악성을 지닌 인물이다. 폴 매카트니와 했던 수많은 공동 작업과 엘튼 존과 같은 거물급 아티스트들의 친분은 굳이 거론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2004 그래미 어워즈에서 브루스 스프링스틴, 데이브 그롤과 선보인 무대는 아직도 많은 음악 관계자들 사이에서 회자되며, 역대 그래미 어워즈 최고의 무대 중 하나로 평가받기 때문이다. 그것은 무대에서 보여준 공연의 완성도에 대한 평일 수도 있지만, 엘비스 코스텔로의 존재 그 자체에 주는 존경의 의미를 담고 있다.

1970년대부터 2010년까지 이어지는 엘비스 코스텔로의 음악은 영국에서 출발해 미국 시장까지 진출한 한 아티스트의 연대기 이전, 40여년에 걸친 팝 음악 변천사의 한 축을 보여주기에 모자람이 없다. 흔히 엘비스 코스텔로를 이야기할 때, 펑크 로커, 혹은 뉴웨이브 아티스트로 분류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의 음악적 스펙트럼은 그가 지나온 시대의 거의 모든 음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이제 그 증명을 대한민국이라는 새로운 나라에서 펼쳐 보이려 하고 있다.

  

 

 

<< BIOGRAPHY>>


엘비스 코스텔로 Elvis Costello

  

본명이 '디클란 패트릭 맥마너스(Declan Patrick MacManus)'인 영국의 가수 겸 작곡가 엘비스 코스텔로는 1954년 8월 25일에 런던 서부 주택 지역인 패딩턴(Paddington)에서 트럼펫 연주자이자 가수인 '로스 맥마너스(Ross MacManus)'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릴때 부터 아버지의 음악 활동을 보면서 자란 엘비스 코스텔로는 자연스럽게 자신도 가수가 되겠다는 꿈을 가지게 된다. 이런 엘비스 코스텔로가 처음으로 밴드를 결성한 것은 1971년의 일로 '앨런 메이스(Allan Mayes)'와 함께 결성한 '러스티(Rusty)'라는 이름의 포크 듀오였다. 솔로와 듀오로 나이크 클럽과 포크 클럽의 무대를 중심으로 1973년 까지 활동한 엘비스 코스텔로는 1974년에 '플립 시티(Flip City)'라는 이름의 새로운 밴드를 결성하였다.


이때 부터 엘비스 코스텔로는 무대에서 본명을 짧게 줄여 'D.P. Costello' 이름을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이 즈음 엘비스 코스텔로의 아버지인 로스 맥마너스는 음료수 회사인 '알 화이트 레모네이드(R. White's Lemonade)'사의 광고에 사용될 노래인 'I'm a Secret Lemonade Drinker'를 만들고 엘비스 코스텔로에게 녹음에 참여할 것을 부탁하게 된다. 아버지의 부탁으로 생애 처음으로 텔레비전 방송을 통해 공개될 노래의 녹음에 참여한 엘비스 코스텔로는 아버지가 부르는 노래를 뒤에서 받쳐주는 보조 보컬을 맡았다. 한편 부자가 참여한 이 곡은 1974년에 '국제 광고제(International Advertising Festival)'에 출품되어 은상을 수상하였다.


스티프 음반사와 계약한 엘비스 코스텔로는 'D.P. Costello'라는 이름 대신 엘비스 프레슬리를 연상 시키는 이름인 엘비스 코스텔로로 바꾸었다. 1977년 3월 25일에 싱글 'Less Than Zero'를 발표하면서 데뷔한 엘비스 코스텔로는 7월 22일에 데뷔 음반 'My Aim Is True'를 발표하였다. 엘비스 코스텔로의 데뷔 음반은 197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영국의 음악 운동인 '퍼브 록(Pub Rock: 컨트리와 리듬 앤드 블루스에 뿌리를 두고 기본에 충실하자는 기치를 내건 음악 운동)'에 동참한 음반으로 대중들의 지지를 받으며 영국 앨범 차트에서 14위까지 진출하였다.


1978년에 발표된 두번째 음반 'This Year's Model' 역시 로큰롤에 충실한 음반으로 앨범 차트에서 4위까지 진출하며 사람들에게 새로운 로커의 출현을 알리게 된다. 영국과 미국, 양국에서 사랑받으며 1970년대 말 부터 시작된 엘비스 코스텔로의 전성기는 1980년대를 거쳐 1990년대까지 이어졌으며 1999년에는 '줄리아 로버츠(Julia Roberts)'와 '휴 그랜트(Hugh Grant)' 주연의 영화 '노팅 힐(Notting Hill)'에 삽입된 'She'를 발표하여 다시 한번 화제의 인물로 떠오르게 된다.프랑스 가수 '찰스 아즈네버(Charles Aznavour)'가 1974년에 발표하여 영국 싱글 차트에서 1위를 기록했던 노래인 'She'는 엘비스 코스텔에 의해 커버되어 영화에 삽입되었는데 영국 싱글 차트에서 19위를 기록하였다. 또한 영화의 성공과 함께 이 곡은 전세계적인 히트 곡이 되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광고 음악과 드라마 등에 사용되며 많은 사랑을 받게 된다.

  

  

<주요 활동>


- 1954년 영국 출생
- 1977년 파시스트 단체의 리더 오스왈드 모슬리(Oswald Mosley)에 대한 내용을 담은 데뷔 싱글 [Less Than Zero] 를 발표하며 이슈를 몰고 옴.
- 같은 해, 밴드 어트랙션스(The attractions) 결성해 첫 앨범 [My aim is true] 발표하며 영국과 미국 평론가들에게 큰 호평
- 1978년 2집 [This Year's Model], 1979년 [Armed Forces], 1980년의 [Get Happy!],
1981년의 [Trust] 앨범 등 현재까지 약 50여 장의 앨범을 발표.
- 폴 매카트니와의 공동 작업, 퀸의 프레디 머큐리 추모공연, 밥 딜런, 닐 영, 조지 거쉰 헌정 앨범 참여, 브로드스키 현악 4중주, 안네 소피 폰 오터 등과의 콜라보레이션으로 록, 팝, 재즈, 클래식, 컨트리, 소울, 챔버 팝, 블루스, 포크, 레게, 켈틱 등 한계와 장르를 뛰어 넘는 음악세계 구축.
- 1998년 전설적인 작곡가 버트 바카락과 함께 한 음반 [Painted From Memory]로 제41회 그래미 어워드 최우수 팝 보컬 협연상 수상, 1999년에는 영화 [노팅 힐]의 주제가 ’She’를 부르며 세계적인 인기 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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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댄스 채널을 통해 <스펙타클: 엘비스 코스텔로와…> (Spectacle: Elvis Costello with …)의 진행자로 활동, 엘튼 존, 루 리드와 줄리안 슈나벨, 빌 클린턴, 제임스 테일러, 토니 베넷, 더 폴리스, 노라 존스, 르네 플레밍, 허비 행콕, 다이애나 크롤과 스모키 로빈슨 등 엄청난 라인업의 뮤지션들을 게스트로 초대하며 한 차원 높은 수준의 음악 프로그램을 만들었다는 평가.
- 현재까지도 전 세계 최고의 락 페스티벌에서 공연하며 버락 오바마의 초대를 받아 폴 매카트니와 함께 백악관 공연을 갖는 등 영미권에서 최고의 음악계 거장으로 추앙 받으며 활발한 활동 중.